화전벌말교회 “마을에 선한 손을 펴는 교회” – 마을목회와 교회 회복
/ 강대석 목사 (고양시 화전벌말교회, 예장마을만들기네트워크 이사)

1. 개척 당시 마을의 상황
화전벌말교회가 위치한 곳은 경기도 고양시 화전동으로 대형 군 부대가 5개나 있는 군사보호 구역이다. 더구나 수도권 외곽의 그린벨트 지역으로 지난 40~50년 동안 온갖 규제에 묶인 개발제한지역이어서 ‘개 집도 맘대로 못 짓는’ 마을이다. 주소는 고양시이지만 전화는 서울 지역번호인 ’02’를 사용한다. 서울시 은평구 구파발, 갈현동, 수색동과 맞닿아 서울시도, 고양시의 변두리로 양쪽 시 모두 관심을 두지 않아 오랜 세월 ‘잊혀진 마을’ ‘사람이 살 것 같지 않은 마을’이었다. 당연히 마을 구성원들의 의식과 생활도 함께 낙후된 곳이었다.
2. 개척 당시 교회의 형편
무슨 일이든 아예 처음부터 시작하는 것이 무너진 것을 다시 세우는 일보다 쉬운 데, 화전벌말교회는 1975년부터 2003년까지 무려 28년 동안 잊혀지고 버려진 지역사회 상황과 같은 모습이었다.
1975년 처음 교회를 설립한 목회자는 가정 집에서 개척교회 시작하였지만, 기도원에 다녀오던 중 오토바이 사고로 돌아가신 것을 마을 주민들은 ‘목사가 기도원 갔다 오다가 교통사고로 죽었다’고 기억하고 있었다.
이후 부임한 목회자는 이런 지역 상황에 목회의 한계를 느끼고 일산 신도시로 옮겨 갔는데, 그 일로 마을에서는 ‘목사가 교회를 팔고 갔다’ 하였고, 몇 안 되는 남은 교인들은 ‘목사님이 우리를 버리고 신도시로 갔다’는 실망으로 교회와 목회자를 멀리하는 분위기가 가득했다.
세 번째로 교회당을 매입해 들어 온 목회자는 군소 교단의 ‘총회장을 한다. 부흥회를 한다’며 교회와 지역사회에는 소홀히 하고 외부 활동만 하던 목사였고 안타까운 일이지만 지적장애가 있던 아들이 마을 가게에서 외상으로 음식을 먹고 갚지 않는 등 마을의 원성이 적지 않아 결국 교회를 포기하고 말았다. 이것이 화전벌말교회의 이전 역사였다.
이후 3년 정도 버려져 있던 건물을 이웃 교회의 장로 한 분이 교회당을 건축하는 동안 임시 예배처소로 매입했다가 사정상 다시 처분하려고 내놓고 한국기독공보에 광고로 올려 놓은 것을 보았다. 그 장로를 우연히 만난 자리에서 그 동안의 사정을 물으니 교회를 개척하려는 목회자들 몇 명이 다녀갔고 지역에서 창고로 사용하려는 이가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교회당이 이렇게 실패를 거듭하고 잊혀져 창고가 되고 말 것이라는 이야기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아내에게 상의하였다. “이런 안타까운 교회가 있는데… 갑시다.” 나는 내가 딱 가고 싶은 그런 교회였지만 아내는 당연히 주저하였다. “그럼 3일만 기도해 보고 정합시다.” 3일 후 아내가 말했다. “갑시다!”
2003년 12월 26일. 3년 동안 닫혀있던 교회당 문을 열고 수리를 시작했다. 지나는 마을 주민들은 노골적으로 고개를 돌리며 외면했다. 이런 분위기에 그냥 있을 수는 없었다. 마을 주민들을 찾아다니며 교회를 새로 시작하려고 온 목사라고 인사하였다. 그러자 마을에서 방을 여럿 세 놓고 사는 어떤 분이 그랬다. “돼지새끼를 키우면 키웠지, 교인들에게는 세를 안 준다.” 그만큼 교회에 대한 인식은 형편 없었고 전도의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3, 화전벌말교회
1) 지역 선정
‘하필이면 왜 이런 곳에 교회를 개척했냐?’고 묻는 분들이 있다. 하지만 나는 신학교에 가면서 ‘교회가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 간다. 나의 고향교회 같은 곳에 간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내가 성장한 시골교회는 목회자들이 부임하고 기회만 되면 도시로 떠나버리는 형편이었다. 교회를 홀로 지켜내신 어머니께서 “전도사님이 또 가셨다. 다른 좋은 분이 오시도록 기도해라”는 전화를 하실 때마다, 그렇게 쉽게 떠나는 목회자들에게 서운했고 야속한 마음까지 들곤 했다.
‘만일 내가 목사라면 이처럼 목회자들에게 외면당하고 버려지는 시골 교회를 지킬텐데’라는 마음이 늘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신학교에 들어갈 때 바로 이것이 내 나름 하나님께 바친 소박한 나의 서원이었고 나 자신과의 약속이었다. “왜 굳이 어려운 길을 가냐?”고 하면 그에 나의 대답은 이것이었다. “그게 당연한 거잖아요!”
2) 교회이름
또 어떤 분들은 교회 이름을 두고도 세련되지 못하고 촌스럽다고 한다. 하지만 교회는 마을에서 주민과 함께 해야 하고 주민들에게 친근한 이미지를 줘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마을의 이름(고양시 화전동 벌말)을 따라 <화전벌말교회>라고 하였다.
4, 마을목회 활동
교회를 시작하면서 교회 간판을 제작할 때 이렇게 만들어 달았다. <선한 손을 펴 교회를 교회되게 하는 화전벌말교회> 이 문구 한 줄 속에 나의 목회의 철학과 방향이 다 표현됐다고 본다. 그리고 옛 교회당의 창문 6개에 햇빛 가리개용 커튼을 만들어 다음 6개의 표어를 써 넣었다. <사랑은 동사다 * 우리 동네는 우리가 책임진다 * 최선을 넘어 전부로 * 심는 대로 거둔다 * 교회 축복의 통로 * 기도는 생명줄 – 전도는 면류관> 그리고 늘 이 표어들을 함께 외치며 교회가 마을에 마땅히 해야 하는 일들을 다해 왔다.
마을청소, 침술봉사, 단풍구경, 반찬나눔, 의료봉사, 방과후 교실, 음악회, 장수사진 찍어드리기, 동네 게시판, 버스 정류장 배차 시간 및 노선표 제작, 안경 맞춰 드리기, 발마사지 봉사, 도배봉사, 장학금 지급, 출근 길 빵 차 나누기, 경로잔치, 항공대학생 대상 기숙사 제공 등.
5. 나의 마을목회
‘마을목회’를 정의하는 말들이 여럿이 있지만 나는 <마을을 교회 삼고, 주민을 교인 삼아 목회 하는 것>이라는 말이 가장 마음에 와 닿는다. 왜냐하면 이 말을 접한 것은 최근 일이지만 내가 지난 20년 동안 마을에서 해온 목회 활동을 그대로 가장 잘 대변해주는 말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동안 기독교는 ‘교회는 거룩하고 세상은 악하다’는 이원론적인 생각으로 세상을 멀리해 왔다. 또 중세시대부터 교권이 정치와 결탁하여 타락을 했기에 교회가 세상과 거리를 두고, 정치와 거리를 둬야 한다는 생각이 마치 그게 전통인 것으로 알려졌고 관습처럼 교회 안에 내재되어 있었다.
이런 분위기가 몹시 아쉬웠다. 교회가 교인만을 위한 교회여서는 안 되고 세상을 품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마을목회’라고 하면 교회 안의 목회 활동에 마을 주민들을 참여시키는 정도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나는 마을로 나갔다. 그리고 수십 년 동안 교회에 대한 마음이 닫혀 있던 마을주민들과 소통을 위해 의도적으로 노력했다. 이것이 마을목회의 시작이다.
1) 통계 조사/ 2005년 12월 개척 이듬해 주변 마을 현황을 조사했다.
2) 통장/ 2008-2012년까지 4년간 고양시 화전동 10통장을 역임하며 마을의 활기를 되찾도록 많은 노력을 하였다.
3) 참여예산위원/ 화전동 참여예산 위원회 위원으로 참여하여 마을의 상황을 살폈다.
4) 주민자치위원 2년, 부위원장 1년, 위원장 4년, 위원회 고문 3년
5) 지역사회 보장 협의체 위원장/ 8년 동안 화전동 복지관련 업무
6) 화전동 마을축제 추진위원장/ 7-8년
7) 화전동 미래 발전위원장/ 3년
8) 마을과 함께 하는 노래 지어 부르기 : 고양시와 화전동에 관련된 온갖 행사장에서 마을을 위한 노래를 불렀다.
첫째, 우리 마을 주민들에게 소망을 주는 노래를 불렀다. 열악한 환경 탓에 피해의식, 패배의식, 좌절감, 우울감 등에 사로잡힌 주민들에게 희망, 용기를 주려는 것이었는데 교회 밖의 주민들에게 특히 열렬한 호응을 받았다.
원곡 / 아빠의 청춘
개사곡 / 희망의 화전
전국에서 제일가는, 고양시 화전/
화전 주민 잘되기를 행복하기를/
우리 모두 힘을 모아, 지혜를 모아/
살기 좋은 우리화전 만들어가세/
우리화전 내일에는, 희망이 있다/
원더플 원더플 고양시 화전, 부라보, 부라보 우리 화전동
통장 때 부른 이 노래는 이후 경로잔치에서 나의 애창곡이 되었다.
둘째, 우리 마을에 속한 지역 정치인들에게 민원성 노래를 불렀다. 또 마을축제 때는 마을 앞으로 흐르는 창릉천과 군부대 30사단이 있는 망월산을 넣어 개사하여 불렀다.
원곡 / 목포의 눈물
개사곡 / 화전의 눈물
창릉천 굽이굽이, 흘러서 가고/
망월산 푸른 숲이, 둘러싼 마을/
이름은 꽃밭이란, 아름다운 마을인데/
주거환경 열악하니 화전의 설움
군사보호구역, 그린벨트에 묶여 열악한 동네 환경을 벽화축제에 참석한 시장, 국회의원, 사단장, 시의회의 원들에게 어필하려고 주민자치 위원장 인사말 대신 이렇게 개사한 노래를 부른 것이었다. 이후에 축제 때 마다 4년간 불렀더니 창릉 신도시 개발 발표가 났다.
6. 마을목회의 결과
1) 마을 밖에서
개척 6년 만에 우리 교단 총회 자립위원회에서 모범자립교회로 선정되어 <반석위에 세운 교회> 총회 발간 사례집에 실렸다. 기윤실 선정 ‘지역사회와 함께 하는 교회상’ 수상하였고 경기도지사 표창, 고양시장 표창 등을 받았다. 그리고 CTS 뉴스, 강남대학교 학생 연구 대상교회, 교회를 개척하려는 목사님들이 훈련과정에 추천교회, 기독공보 기사 등으로 알려졌다.
2) 마을 안에서
“돼지새끼를 키우면 키웠지 교인들에게는 세를 안 준다”고 했던 박영호 씨는 요즘 나를 만나면 이렇게 관심을 보이고 교회를 걱정해 준다. “강 목사, 손님들 많이 와? 손님들이 많이 와야 할 텐데.” 같은 말을 했던 김금실 씨는 예수님 믿고 우리교회에서 집사로 봉사하다가 몇 년 전에 돌아가셨다. 마을 무당의 며느리 둘이 지금은 우리교회에서 집사로 봉사하고 있다.
마을 분들은 글을 몰라 창피해서, 아들이 못 가게 해서 등등 이런 저런 이유로 교회 출석은 하지 못하지만, 화전벌말교회에 대해서만큼은 다들 자발적인 일등 홍보대사가 되어 이렇게 말하고 있다. “교회가 고맙다!. 목사가 고맙다! 우리마을에 교회가 있어서 좋다! 행복하다!”
3) 교회 안에서
교회자립과 성장을 이룬 것에 대하여 우리 교인은 자부심을 갇게 되었고 교회 밖에서 지역사회와 교단 총회에서 인정해 주고 좋은 평판을 듣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헌신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다.
7. 마치며
마을목회의 성경적 근거로, 마을목회를 하는 어떤 분들은 요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는 말씀에 따라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시니 우리도 세상을 사랑해야 하고 그래서 마을목회를 하는 것이라고 한다. 또 어떤 분들은, 마태9:35 “예수께서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니 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는 말씀을 마을목회의 근거로 삼는 분들도 있다.
예레미야 29장 4-7절은 내가 마을목회에 대한 이론적 근거로 보는 본문 중의 하나이다. 4절에서 이는 예레미야가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 끌려가 있는 포로 민들에게 전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한다. B.C. 597년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 의하여 바벨론 땅으로 사로잡혀 간 유대인들은 그 땅에 정착할 생각을 하지 못하고 그저 잠시, 일시적으로 머무를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 이유는 거짓선지자 하나냐, 스마야가 하나님의 뜻에 반하여 바벨론은 속히 멸망하고 너희들은 곧 귀환 할 것이라고 가르쳤기 때문이다. 그래서 포로로 잡혀간 유대인들은 몸은 바벨론에 있으면서도 마음은 가나안에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현재 그들이 거하고 있는 바벨론 땅을 사랑하지 못했다. 이방인의 땅, 곧 멸망할 바벨론 거기에 무슨 미련이 있었겠는가? 하루 이틀 지내다가 떠날 야영지라는 마음이 있으니 그 땅에 대한 애착도, 애정도 없이 그저 시간만 흘러가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선배 선교사들이 후배 선교사들에게 ‘부임하는 선교지에 뼈를 묻을 각오를 하라’고 조언을 하는 이유와 의미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목회를 하면서 우선 경제적인 형편이 어려우니 이곳에 교회를 개척하지만 조금 나아지면 더 좋은 곳으로 옮기리라 생각하고 있다면 그곳 목회 현장이 기름 질 수가 없다. 어느 교회를 출석하면서 사정 상 이 교회에 출석 하지만 조금 나아지면 더 좋은 곳으로 옮기리라 생각하고 있다면 그곳에서의 신앙생활이 은혜로울 수가 없다.
그런 삶의 현장이라면, 안정도, 평안도, 애정도 없을 것이다. 그야말로 뼈를 묻을 각오로 살아야 한다.
이런 상황에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통해 하신 하신 말씀은, 5-7절, “너희는 집을 짓고 거기에 살며 텃밭을 만들고 그 열매를 먹으라. 아내를 맞이하여 자녀를 낳으며, 너희 아들이 아내를 맞이하며 너희 딸이 남편을 맞아 그들로 자녀를 낳게 하여, 너희가 거기에서 번성하고 줄어들지 아니하게 하라. 너희는 내가 사로잡혀 가게 한 그 성읍의 평안을 구하고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라. 이는 그 성읍이 평안함으로 너희도 평안할 것임이라.”
70년이라는 한정된 기간이 정해졌지만 그곳에서 영원히 살 것 이라는 마음 자세로 살라는 말씀이다. ‘이 땅 곧 나의 마을을 사랑하고, 이 땅의 사람들 곧 나 마을의 주민들을 나에게 맡겨 주셨다’고 생각하고, 선한 손을 펴, 교회를 교회되게 하고, 교회의 영광을 회복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란다. (학개 2:9) “성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이곳에 평강을 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아멘.”
*관련 내용 보기 : [걷고 싶은 길 가고 싶은 거리] “낙후된 마을 살리자” 주민들이 직접 붓칠… 화합의 마법이 통했다 | 한국일보
*관련 기사 보기 : 제6기 마을목회자학교 강의 4 : “화전벌말교회 마을목회 이야기” (강대석 목사) – 마을목회신문
